오래도록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나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두 손을 모으고, 텅 빈 하늘을 향해 마음을 다해 외쳐본 적이 있나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착하게 살면 언젠가 이 노력을 알아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 적이 있나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애를 쓰면 쓸수록 현실은 더 단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것들은 신기루처럼 저만치 멀어지는 기분만 들었을 겁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채 평생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무력감. 남들은 쉽게 얻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세상은 이토록 박하게 구는 걸까.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답답한 현실이 외부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당신을 가로막고 있던 그 단단한 벽이, 사실은 당신의 마음속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면요?
그토록 찾아 헤맨 해답이 바깥세상이 아닌, 바로 당신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처음부터 존재했다면 어떨까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당신이 왜 그토록 애써야만 했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지, 그 비밀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 오래된 책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오래전,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살았던 특정 인물들의 역사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적을 행했던 예수, 거인을 물리친 다윗, 홍해를 가른 모세. 우리는 이들을 우러러보거나,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신화 속 인물로 여기며 거리를 둡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장 깊은 비밀은, 그것이 특정 시대의 역사책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펼쳐지는 영원한 드라마의 안내서라는 점에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외부의 사실이 아니라 당신이 겪거나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마음의 상태, 즉 의식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가난이라는 상태에 갇혀 괴로워하는 당신은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간절히 소원을 이루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는 당신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40년간 광야를 헤매는 모습과 같습니다.
병든 몸으로 누워 있는 것은 38년간 무력하게 누워있던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이며, 거대한 문제 앞에서 절망하는 것은 골리앗 앞에 선 두려움에 떠는 군중입니다.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빚더미에 앉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골리앗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느끼며 원하는 것을 창조해내는 당신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는 예수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믿음 하나로 해결하는 당신은 돌멩이 하나로 거인을 쓰러뜨린 다윗입니다. 풍요로운 지혜와 부를 누리는 당신은 솔로몬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책은 당신에게 누군가를 숭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위대한 창조의 힘을 깨워, 당신 스스로가 원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가장 위대한 심리학 교과서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의식에 대한 가장 깊고 오래된 지도책인 셈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기도의 진짜 의미
성경에서 모세가 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외부의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이름이라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창조의 공식이자, 가장 강력한 기도의 본질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인식이 바로 신이며, 창조의 시작점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나는…이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창조주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나라는 존재감 뒤에 어떤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 당신의 세상은 그대로 창조됩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것을 매일, 매 순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강력한 힘을 깨닫지 못한 채, 원하지 않는 현실을 창조하는 데 남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돈이 없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할 때, 당신은 나는 스스로 돈이 없는 자니라고 기도하는 중입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해라고 느낄 때, 당신은 나는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는 자니라고 선언하며 그런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뭘 해도 안 돼, 나는 항상 운이 나빠, 나는 이 병을 평생 안고 가야 해.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세상에서는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강력한 기도였습니다.
반대로, 아직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으로 나는 건강하다, 나는 사랑받는다, 나는 풍요롭다고 느끼고 믿을 때, 당신은 스스로 있는 자의 권능을 사용하여 새로운 현실에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더 이상 외부의 신에게 무언가를 간청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동적인 구걸이 아니라, 지극히 능동적인 선언입니다. 기도는 당신이 되기를 원하는 그 모습 자체를 나라는 존재감과 합일시키는, 가장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당신의 나는…이라는 선언이 곧 당신의 세계입니다.
당신의 이마에 박힌 돌멩이, 믿음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시다. 모든 이들이 갑옷과 칼로 무장하고도 거인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은 막대기와 돌멩이 몇 개만 들고 그 앞에 섭니다.
여기서 골리앗은 당신의 삶을 가로막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문제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빚, 절망적인 건강 상태,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인간관계.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과 이성적인 생각은 끊임없이 이 문제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속삭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군사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크기에 압도당했습니다.
다윗이 선택한 무기는 세상의 기준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왕이 건네준 무거운 갑옷과 칼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방법, 이성적인 노력, 상식적인 해결책을 상징합니다. 빚을 갚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을 뛰거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상대에게 매달리는 것과 같은 행위들입니다. 때로는 이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믿음이 바뀌지 않으면 갑옷의 무게에 짓눌려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치게 됩니다.
대신 다윗은 자신만의 무기, 즉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집어 듭니다. 이 돌멩이가 바로 당신의 상상이며, 가정입니다. 수많은 무기가 아닌,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된 상상.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며 그가 이미 쓰러진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만약 내가 이긴다면?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이겼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즉 가정을 이마 한가운데(의식의 중심)에 정확히 박아 넣었습니다. 문제가 아무리 커 보여도, 당신의 믿음, 즉 소원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단 하나의 확고한 가정이 있다면, 그 어떤 거인도 당신 앞에서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싸움은 바깥세상이 아닌, 오직 당신의 마음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더 큰 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다윗을 깨워 이미 승리했음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작은 씨앗, 가정
예수는 천국이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서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겨자씨는 바로 당신의 가정입니다. 당신이 마음속에 품는 소원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밭에 비해 너무나 미약해서, 이게 정말 무슨 힘이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억 원의 빚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는 풍요롭다고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사람이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공허한 외침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의 미약함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씨앗 안에는 거대한 나무가 될 모든 정보와 힘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이 씨앗을 당신의 마음이라는 좋은 땅에 심고, 믿음이라는 물을 주며, 의심이라는 벌레가 파먹지 않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씨앗을 심어놓고는, 싹이 났는지 궁금해서 매일 땅을 파헤쳐 봅니다. 왜 아직 변화가 없지?, 정말 되는 게 맞나?라는 의심으로 씨앗을 흔드는 것입니다. 통장 잔고를 계속 확인하고, 연락 없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현실의 증거를 찾으려고 애씁니다. 이런 행동은 씨앗이 뿌리내릴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가정을 마음속에 품었다면, 그 감각을 느끼고 편안하게 머무르세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의 작은 씨앗은 이미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현실이라는 나무로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역할은 씨앗을 심는 것까지입니다. 자라게 하는 것은 당신 안의 법칙, 생명의 힘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잠들기 전 5분, 천국을 여는 열쇠
우리의 마음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낮 동안 깨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현재의식, 그리고 우리의 모든 믿음과 감정이 저장되어 현실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잠재의식입니다.
현재의식이 문지기처럼 버티고 서서 그건 말이 안 돼, 넌 할 수 없어라며 새로운 믿음이 들어오는 것을 막곤 합니다. 이성적인 생각, 과거의 경험, 주변의 의견들이 바로 이 문지기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이 문지기가 힘을 잃고 졸기 시작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잠들기 직전, 몸은 나른해지고 생각은 몽롱해지는 그 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이 바로 당신의 잠재의식이라는 보물 창고의 문이 활짝 열리는 황금 같은 기회입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하루 동안 있었던 걱정이나 문제를 되새기는 대신, 당신의 소원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모두 사용해서 실제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직장에 합격하는 것이 소원이라면,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고 그 종이의 질감을 느끼거나, 새로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동료가 축하한다며 건네는 커피의 향을 맡아보세요. 그 성취감과 안정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 소원이라면, 그 사람과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그 온기를 느끼거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그 순간의 행복과 평화로움을 가슴 가득 채우는 겁니다.
그 만족감과 감사함 속에서 스르르 잠이 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당신의 잠재의식은 이 마지막 감각을 설계도로 삼아, 당신의 현실 세계에 그것을 그대로 구현해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입니다. 잠들기 전 5분은 그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는 가장 신성한 의식의 시간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저 그림자일 뿐
거울 앞에 서서 당신의 모습을 비춰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거울 속 당신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울에 비친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거나, 거울에게 웃으라고 소리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거울 밖의 당신이 먼저 미소를 지으면, 거울 속의 모습도 따라서 미소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세계가 바로 이 거울과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 당신의 상상력이 거울 앞에 선 실체입니다.
우리는 이 간단한 원리를 잊고, 평생 동안 거울 속의 상을 바꾸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돈이 없다는 현실(거울 속의 상)을 바꾸기 위해 돈을 쫓고, 아프다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병원만 전전하며, 외롭다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사람에게 매달립니다.
이것은 마치 거울 속의 시무룩한 얼굴을 억지로 웃게 만들려는 헛된 노력과 같습니다. 거울 속의 텅 빈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 쉬고, 거울 속의 아픈 몸을 보며 절망하고, 거울 속의 외로운 자신을 보며 슬퍼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거울은 당신의 그 절망적인 표정만을 더욱 충실하게 비출 뿐입니다.
이제 그 노력을 멈추고, 거울 밖에 서 있는 당신 자신에게로 돌아오세요. 당신의 마음속에서 먼저 풍요를 느끼고, 건강함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껴보세요. 당신의 내면이 먼저 변하면, 현실이라는 거울은 그 변화된 모습을 지체 없이 비춰줄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세상은 원인이 아니라, 당신 마음의 결과이자 그림자일 뿐입니다.
모든 감정은 길을 알려주는 신호등입니다
살다 보면 불안, 질투, 분노, 슬픔 같은 원치 않는 감정들이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 나쁜 것,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기며 억누르거나 외면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내비게이션처럼 현재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등입니다.
친구가 좋은 소식을 전해왔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질투심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나는 저런 것을 가질 자격이 없어라는 당신의 숨겨진 믿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그 감정을 비난하는 대신, 아, 내가 저것을 정말로 원하는구나. 나도 저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 감정이 나타났구나라고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세요.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당신이 그것을 가진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는, 당신이 현재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상상을 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상상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땐 잠시 멈추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 즉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는 상상으로 의식의 방향을 전환해 보세요.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그 감정은 당신이 통제력을 잃고 피해자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순간, 당신은 상황의 주인으로 돌아와 원하는 대로 사건을 재구성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모든 감정은 당신의 창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지표입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그 신호를 읽어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식의 뱃머리를 돌리세요.
용서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한 해방
과거에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기억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무거운 족쇄가 되곤 합니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분노와 원망이 치밀어 오르고, 그 기억은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우리를 괴롭힙니다.
많은 이들이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용서는 그 기억의 족쇄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가장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과거의 그 장면을 내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재상영하며 그 고통을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독이 든 잔을 스스로 마시면서 상대가 고통받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 창조의 관점에서 용서는 수정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을 도덕적으로 용납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신, 당신의 상상 속에서 그 불쾌했던 사건을 당신이 원했던 모습으로 다시 써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님께 들었던 비난의 말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면, 상상 속에서 그 시절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부모님이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네가 자랑스럽다,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는 장면을 만들어보세요. 그 목소리와 온기를 생생하게 느껴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저항감이 들 수 있지만, 반복하다 보면 그 장면과 연결되었던 고통스러운 감정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과거의 사건을 상상 속에서 바꾸면, 그 사건이 현재의 당신에게 미치던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둠이 더 이상 현재의 당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당신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당신 안의 아버지는 언제나 응답합니다
예수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늘 위 구름 속에 앉아있는 백발의 신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의 잠재의식, 당신의 소원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창조의 힘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현재의식, 무엇을 창조할지 선택하고 상상하는 주체입니다. 당신의 현재의식(나)이 어떤 소원을 품고 그것이 이루어졌음을 느끼면, 당신의 잠재의식(아버지)은 그 느낌을 어떠한 비판이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 속에 구현해 냅니다.
당신 안의 아버지는 당신의 소원이 선한지 악한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마치 옥토가 씨앗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싹을 틔워주듯이, 잠재의식은 당신이 품는 믿음의 씨앗을 가리지 않고 현실로 길러냅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엄청난 자유와 동시에 책임을 줍니다. 더 이상 당신의 삶에 대해 남을 탓하거나 외부 환경에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이 당신 안의 아버지에게 무엇을 요청했는지, 즉 어떤 믿음을 품었는지에 대한 정직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겪는 모든 경험은 당신이 심은 생각과 믿음의 수확물입니다. 이 법칙을 이해하면 원망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느낄 때, 당신 안의 아버지는 언제나, 예외 없이, 당신의 믿음에 응답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잔을 채울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혹은 세상에게 무언가를 구걸해 왔을지 모릅니다. 사랑을 갈구하고, 인정을 바라고, 돈을 쫓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잔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당신의 의식, 당신의 상상력이 바로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잔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먼저 당신의 마음속에서 사랑받는 느낌으로 잔을 가득 채우세요.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스스로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며 당신의 잔을 채우세요. 당신이 먼저 내면의 잔을 채우면, 세상은 그 가득 찬 잔을 반영하여 당신에게 사랑과 인정을 보내올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어색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믿음의 근육을 키우는 연습입니다. 내일 아침 마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상상하며 그 향과 따스함을 미리 느껴보거나, 누군가에게서 기분 좋은 연락이 오는 상상을 하며 미소 지어보세요. 붐비는 곳에서 완벽한 주차 자리를 찾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나타났을 때, 우연으로 치부하지 말고 아, 나의 상상이 이것을 가져왔구나!라고 부드럽게 인정해 주세요. 이 작은 성공들이 쌓여 당신의 믿음은 단단해질 것입니다. 단추를 창조하는 원리나 왕국을 창조하는 원리는 정확히 똑같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세상을 창조할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힘을 사용하여, 당신의 잔을 기쁨과 감사와 풍요로움으로 채워나갈 시간입니다.
당신의 삶은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돌덩어리일 뿐이라고 말하며 그 곁을 지나쳐 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거칠고 투박한 표면을 보며 불평하고, 왜 더 아름다운 모양이 아니냐고 세상을 탓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조각가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손에는 상상력이라는 가장 정교한 망치와 정이 쥐어져 있습니다.
당신의 임무는 돌덩어리 바깥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이미 완벽하게 존재하는 걸작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아닌 불필요한 부분들을 믿음으로 하나씩 떼어내는 것입니다.
두려움, 의심, 자기 비난이라는 돌 부스러기들을 떼어내고 나면, 그 안에는 본래부터 존재했던 당신의 가장 빛나는 모습, 당신이 꿈꾸던 바로 그 삶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당신은 조각가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이라는 걸작은, 지금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