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애써도 현실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한 밤이 있나요? 분명히 목표를 세우고,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기분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간절히 바라는 소원은 늘 저만치 멀리서 무지개처럼 손짓만 할 뿐, 좀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얻는 것 같은데, 왜 유독 나에게만 세상이 이토록 무심하고 차가운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좋다는 감사일기를 펼쳐보지만, 텅 비어버린 마음을 쥐어짜듯 감사합니다라는 글자를 꾸역꾸역 채워 넣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억지로 쓰는 글자 위로 오히려 서러운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답답하고 견고해 보이는 현실이 정말로 당신 바깥의 세상이나 운명의 장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당신의 마음속에서 매일 조용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쓰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면요? 그 이야기에 따라 당신의 세상이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라면, 당신은 오늘 밤, 어떤 이야기를 새로 써 내려가고 싶으신가요?
텅 빈 마음에 억지로 채워 넣는 감사가 아니에요
많은 자기계발서나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일기를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은 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긍정적인 태도가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고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 말은 분명한 진실의 한 조각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사막처럼 텅 비어있고, 당장 마주한 현실은 어깨를 짓누르는 바위처럼 버거운데, 억지로 감사합니다라는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 일만큼 공허한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 없는 주문과 같습니다. 마치 맛없는 음식을 대접받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칭찬해야 하는 예의 바른 손님처럼, 당신의 마음은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데 입으로만, 손으로만 예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지금의 현실에 저항하고 있는데, 이성만으로 그것을 억누르려는 시도입니다. 그런 순간,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좌절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긍정적이지 못할까?, 나는 왜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할까? 라며 스스로를 탓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렇게 감사를 억지로 쥐어짜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라며 감사일기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든데, 억지로 행복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의 슬픔, 분노, 좌절감은 모두 이유가 있으며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신호입니다. 현실 창조를 위한 감사일기는 감정을 억누르고 긍정적인 척하는 연극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가장 깊은 소망이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진 세상으로 먼저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현재의 나에게 보내오는 기쁨과 안도의 편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텅 빈 마음에 감사를 억지로 채워 넣으려 애쓰지 마세요. 당신의 일기장은 숙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답안지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당신이 꿈꾸는 세상을 마음껏 미리 그려보는 자유롭고 신성한 스케치북이니까요.
당신의 감사일기는 과거 기록장이 아닌 미래 예언서입니다
우리는 흔히 감사일기를 하루 동안 있었던 좋은 일들을 기록하는 과거 기록장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친구가 친절한 말을 해주어 감사합니다 와 같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것이죠. 물론 이것도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발견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힘을 가진 감사일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아니 아주 과감한 도약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감사일기는 과거의 기록이 아닌, 미래의 예언서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진 그 일을 두고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망이 아니라, 완료된 사실에 대한 보고입니다. 예를 들어, 간절히 원하는 집이 있다면 좋은 집을 갖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결핍의 위치에서 소원을 비는 행위입니다. 대신, 이미 그 집의 주인이 된 당신을 상상하는 겁니다. 포근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앉아 커다란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고, 새로 꾸민 주방에서 좋아하는 차를 끓이는 장면을 오감으로 생생하게 떠올려보는 거죠. 커피 향기, 발바닥에 닿는 원목 마루의 감촉, 창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새소리까지요. 그리고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는 겁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편안한 나만의 집에서 살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제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들어주네요.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평화롭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나 공허한 희망 사항을 적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영역에서 이미 진실인 것을, 보이는 세계로 당당하게 초대하는 강력한 선언이자 명령입니다. 당신의 일기장은 이제부터 일어날 일들을 미리 기록하는 예언의 책이 됩니다.
갖고 싶다는 마음속, 없다는 소리가 들리나요?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 마음의 뒷면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강력한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집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부족하다는 결핍의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는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배경 소음과 같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역설적으로 나는 지금 부자가 아니다라는 현실 인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갈망은 나는 지금 건강하지 않다는 상태에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애절함은 나는 지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외로운 느낌을 더욱 키웁니다. 우리의 잠재의식, 즉 현실을 창조하는 심층 의식은 원한다와 없다는 상태를 논리적으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가 가장 생생하게 느끼고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감정 상태를 현실로 펼쳐낼 뿐입니다. 우리가 갖고 싶다고 외칠수록, 잠재의식은 아, 주인님은 없음의 상태를 강렬하게 느끼고 계시는구나라고 인식하고, 그 없음의 상태를 증명하는 현실을 계속해서 가져다줍니다. 간절히 원하면 원할수록, 그 대상은 더 멀어지는 것 같은 답답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핍의 주파수로는 풍요의 현실을 끌어당길 수 없습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일기는 이 결핍의 주파수를 풍요의 주파수로 의식적으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 도구입니다. 갖고 싶다는 애원의 마음을, 이미 갖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소유의 마음으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긍정적인 생각하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존재의 상태를,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의식의 대전환입니다. 없음의 세계에서 발을 빼서, 있음의 세계로 완전히 이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이미 모든 것을 받은 사람으로서 감사할 때, 세상은 그 새로운 믿음과 느낌에 걸맞은 증거들을 당신 앞에 가져다 놓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감사는 더 이상 무언가를 얻기 위한 애원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에 대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 됩니다.
감정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이미 이루어졌다고 느끼라는데, 도무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죠. 억지로 기쁜 척, 감사한 척 연기를 해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비웃듯이 들려옵니다.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소용이야? 통장 잔고는 그대로인데? 라고요.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감정은 팔의 근육처럼 힘을 주어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마치 꽃과 같아서, 억지로 꽃잎을 잡아당겨 피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꽃잎만 찢어질 뿐입니다. 적절한 햇빛과 충분한 물, 영양분이 가득한 좋은 흙이라는 조건이 갖춰지면 저절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죠. 감사일기를 쓸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감정을 쥐어짜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저절로 피어날 수 있는 상상의 장면이라는 흙과 햇빛을 정성껏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의식 속에서 그 장면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 속에 서 있을 것 같나요? 누가 당신 곁에서 함께 기뻐하고 있나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그 공간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나요? 당신은 어떤 옷을 입고 있나요?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 합격이 소원이라면 합격자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 눈앞이 순간 환해지는 기분,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고 화면을 다시 확인하는 당신의 모습, 옆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환호성과 축하 소리까지. 그 장면 속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그 장면을 영화감독처럼 연출해보세요. 그러면 감사와 기쁨, 안도감과 같은 감정들은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듯 스멀스멀 당신의 가슴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할 겁니다. 바로 그 자연스럽게 피어난 진짜 감정을 일기장에 옮겨 담으세요. 그것이 진짜 힘을 가진 감사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진짜 있음을 느껴보세요
처음부터 너무 거대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소원을 두고 이미 이루어졌다라고 느끼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치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곧바로 깊고 거친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같죠. 마음속 저항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 주변에 있는 아주 작은 것들부터 진짜 있음을 느끼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현실 창조라는 근육을 키우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기초 체력 훈련입니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고 있는 펜의 감촉, 당신의 몸을 받쳐주는 의자의 단단함, 열린 창문으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바람의 느낌, 귓가에 들리는 희미한 자동차 소리나 시계 소리. 이 모든 것은 이미 당신의 현실 안에 명백히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밤 감사일기를 쓸 때, 이 작고 당연한 존재들에 대해 감사하며 그 있음의 느낌에 온전히 집중해보세요. 내 손에 단단하게 잡히는 이 펜의 느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내 생각과 꿈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네요. 하루 종일 나를 편안하게 받쳐준 이 의자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안정감 덕분에 지금 편안히 앉아 쉴 수 있었어요. 이런 작은 감사들은 거창한 목표와는 달리 마음에 아무런 저항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구나, 나는 이미 세상의 지지를 받고 있구나라는 풍요롭고 안정된 느낌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킵니다. 이 평화롭고 충만한 느낌이 바로 현실을 창조하는 핵심 재료이자 기본 바탕입니다. 작은 것에서 있음을 느끼는 연습이 충분히 쌓이면, 당신의 의식은 풍요의 상태에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소원 역시 이미 있음으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집니다.
어젯밤의 당신은 오늘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깨어있는 의식, 즉 이성은 끊임없이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며 판단하고 저항합니다. 이건 말이 안 돼, 저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라며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 무의식의 밭에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문지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잠에 빠져드는 순간, 이 까다로운 문지기는 힘을 잃고 무의식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현실의 씨앗을 아무런 저항 없이 가장 깊은 곳에 심기에 가장 좋은 황금 시간입니다. 잠들기 직전의 상태, 즉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몽롱한 상태를 많은 영적 스승들은 현실 창조의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때 심어진 생각과 느낌은 밤새 당신의 잠재의식 속에서 발아하고 성장할 준비를 합니다. 당신의 감사일기는 잠들기 전, 이 황금 시간에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본입니다. 낮에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를 상상하며 감사일기를 썼다면, 잠들기 직전 침대에 누워 그 일기를 다시 한번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그리고 그 감사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되어,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잠에 드는 겁니다. 마치 내일 개봉할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예고편을 미리 보고 잠드는 것처럼요. 그 기분 좋은 느낌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어보세요. 그렇게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 속에서 잠이 들면, 밤사이 당신의 깊은 의식은 그 느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필요한 사람을 끌어당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며, 당신을 올바른 장소와 시간으로 인도합니다. 어젯밤 당신이 품고 잠든 느낌이 바로 오늘 당신이 경험할 현실의 청사진이었던 셈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글씨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느낌을 읽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감사일기를 가득 채워도, 그 안에 진짜 느낌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힘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잉크가 마른 종이일 뿐, 생명력이 없습니다. 반대로, 비록 서툰 글씨로 단 한 문장을 적었더라도 그 안에 소원이 이루어진 기쁨과 안도감, 가슴 벅찬 평화로운 느낌이 가득 담겨 있다면, 그 문장은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주문이 됩니다. 우주, 혹은 당신의 더 깊은 자아는 당신이 쓴 글씨의 문법이나 논리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 글씨를 쓰면서 당신의 몸과 마음에서 방출하는 느낌의 주파수를 읽고 그것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바로 우주 공용어입니다. 당신의 일기장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닙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한, 당신의 느낌을 가장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개인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니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문법이 틀려도 괜찮고, 표현이 조금 유치하게 느껴져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그 글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 이미 이루어진 세상의 느낌 속으로 당신을 데려다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날은 단지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가슴 벅찬 느낌에 잠시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글자는 느낌이라는 종을 깨우는 종소리일 뿐, 진짜 마법은 당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 그 자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어떻게?라는 질문은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아요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를 상상하며 감사함을 느끼려고 할 때, 우리의 논리적인 이성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데? 그 많은 돈은 어디서 갑자기 생겨나는데? 내 이상형인 그 사람은 어떻게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라면서요. 이 어떻게?라는 질문은 우리가 꿈의 상태에 편안히 머무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라는 과정을 알지 못하면, 그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 창조의 과정에서 어떻게는 우리가 책임질 영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작은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세상의 무한한 지혜와 잠재력이 담당할 몫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것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당신이 할 일은 오직 하나, 목적지에 이미 도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갈 때, 우리는 기차표를 끊은 뒤에는 기차가 어떤 철로를 지나고 어떤 터널을 통과하는지, 신호 체계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일일이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창밖 풍경을 즐기거나 편안히 잠을 자며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죠. 감사일기를 쓰는 것은 바로 이 목적지, 즉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의 기차표를 미리 끊는 행위와 같습니다. 당신은 그저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기만 하면 됩니다. 그곳까지 당신을 데려다줄 길과 방법, 즉 어떻게의 문제는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놀랍고 기적적인 방식으로 저절로 당신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어떻게?라는 무거운 짐은 우주에게 잠시 맡겨두고, 당신은 가벼운 마음으로 결과의 기쁨을 미리 만끽하세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당신이 보내는 느긋한 감사 편지
감사일기를 쓰는 당신의 마음가짐을 한번 점검해보세요. 혹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 조급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쓰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그 간절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절박함은 앞서 말했듯 없음, 즉 결핍의 느낌과 아주 가깝게 붙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쫓는 에너지는, 그것이 아직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할 뿐입니다. 진정한 창조는 안달하고 애쓰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가져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의 평화롭고 느긋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사람의 만족감에서 비롯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감사일기를, 이미 모든 소원을 이룬 미래의 당신이 과거의 당신(지금의 당신)에게 보내는 다정한 안부 편지라고 생각해보세요. 모든 것이 결국에는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이미 알고 있는 그 미래의 당신은, 어떤 말투와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쓸까요? 아마도 무척이나 평온하고, 여유로우며, 지나온 모든 과정에 대한 깊은 감사가 담겨 있을 겁니다. “그때는 참 막막하게 느껴졌었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전혀 없었어. 봐, 모든 것은 결국 이렇게나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아왔는걸. 힘들었던 그 모든 과정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그 모든 순간에 정말 감사해.” 이처럼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의 관점에서, 느긋하고 평화로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일기를 써보세요. 이 평화로운 느낌, 이 안정된 주파수야말로 당신의 소원이 가장 빨리 현실로 달려오게 만드는 강력하고 거대한 자석입니다.
오늘 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나요?
긴 하루가 끝나고, 이제 온전히 당신만의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을 힘들게 했던 걱정거리나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들을 잠시 옆으로 밀어두세요. 그리고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펜이, 모든 이야기를 당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마법 지팡이라고 상상해보는 겁니다. 당신은 당신 삶이라는 이야기의 유일한 작가이며, 어떤 결말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신성한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 밤, 당신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쓰고 싶으신가요?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고 기쁘게 만들어 줄 단 하나의 장면이면 충분합니다. 돈 문제로 하루 종일 걱정했다면, 통장에 원하는 액수가 찍힌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관계 문제로 마음이 힘들었다면, 그 사람과 오해를 풀고 따뜻하게 웃으며 마주 앉아있는 장면을 그려보세요. 그 장면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깊은 안도감과 해방감, 기쁨과 평화를 당신의 가슴에 가득 채우세요. 그리고 당신의 일기장에 그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는 겁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나 쉽고 평화롭게 해결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이렇게 잘 될 일이었네요.” 당신이 진실한 느낌을 담아 쓴 그 문장이, 내일 아침 당신이 눈을 뜨게 될 새로운 현실의 첫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쓰는 대로 펼쳐집니다. 당신의 마음은 비옥한 정원과 같습니다. 어떤 생각과 느낌의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당신의 현실이라는 정원에는 슬픔과 결핍의 잡초가 자라기도 하고 기쁨과 풍요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도 합니다. 감사일기는 그 정원에 의식적으로 기쁨과 풍요,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꽃씨를 심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한번 씨앗을 심었다면, 매일같이 조급하게 땅을 파헤치며 싹이 났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씨앗이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저 씨앗이 이미 땅속 깊은 곳에서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믿고, 따스한 햇살과 같은 당신의 기분 좋은 느낌을 꾸준히 보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날 아침, 당신의 현실 속에 눈부시게 피어난 소원의 꽃을 문득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 삶의 가장 위대한 창조자이자 정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