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도 자꾸만 제자리인 것 같아 마음이 지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간절히 바랐고, 온 마음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세상은 좀처럼 원하는 것을 내어주지 않는 기분. 밤마다 수없이 다짐하고 아침이면 다시 희망을 품어보지만,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마주하는 건 어제와 똑같은 풍경일 때가 많죠. 다른 사람들은 쉽게 얻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이렇게 문이 굳게 닫혀있는 걸까. 혹시 나는 무언가 자격이 없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서 혼자만 안간힘을 쓰는 작은 아이가 된 것 같은 무력감.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그들의 비법을 따라 해 봐도 내 삶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 겁니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답답한 현실이 정말로 당신 바깥에 있는 단단한 벽 때문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만약 그 모든 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서 매일 조용히 상영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면요? 당신이 그토록 바꾸고 싶었던 세상이, 사실은 당신의 생각과 느낌이라는 필름을 영사기 삼아 비춰지고 있던 한 편의 영화였다면, 믿을 수 있으신가요?
더 이상 현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창조에 성공했다고 말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공통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눈앞의 현실과 싸우는 것을 멈췄습니다. 이것은 결코 포기나 체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보통 그 상황 자체를 바꾸려고 온 힘을 다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를 설득하려 하고,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닫힌 문을 억지로 열려고 애를 씁니다. 마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맨손으로 파도를 막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현실은 이미 지나간 생각과 감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보이는 세상은 과거에 내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믿음과 가정들이 옷을 입고 나타난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 메아리를 향해 소리친다고 해서 원래의 소리가 바뀌지 않습니다. 이미 나타난 결과를 바꾸려고 애쓰는 것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싸움을 멈췄습니다. 대신 조용히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파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그 근원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거울에 비친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거울을 닦는 대신, 거울 앞에 선 자신의 표정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들은 현실을 향해 퍼붓던 모든 에너지를 거두어들여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 세상의 소란스러움에 귀를 닫고, 오직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는 늘 부족해’, ‘세상은 불공평해’, ‘좋은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 와 같이, 자신도 모르게 수없이 되뇌던 낡은 대본들을 발견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대본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너는 할 수 없어’라고 속삭일 때, 그 말에 대꾸하며 싸우는 대신, 마음속으로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가졌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 창조의 가장 첫 번째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원하지 않는 현실을 향한 저항을 멈추고, 그 현실을 만들어낸 내면의 원인을 바꾸는 것. 더 이상 그림자와 씨름하지 않고, 그림자를 만드는 빛의 방향을 바꾸는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지고 싶다’가 아닌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소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함정은 바로 ‘결핍감’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원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지금 나에게 그것이 ‘없다’는 느낌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나는 지금 부자가 아니다’라는 현실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은 ‘나는 지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외로움을 증폭시킵니다. 이처럼 ‘원한다’는 마음의 상태는 계속해서 ‘없음’의 상태를 창조해냅니다. 우리의 잠재의식, 즉 내면의 창조주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훨씬 더 정직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비옥한 땅과 같아서, 우리가 ‘결핍’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충실하게 결핍이라는 열매를 맺어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꾼 사람들은 이 비밀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상태에서 ‘가진’ 상태로 자신의 느낌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 단순히 머리로 ‘나는 부자다’라고 되뇌는 것을 넘어, 정말로 부유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현재 시점에서 온전히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풍요로움을 원할 때 단순히 돈을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모든 청구서가 여유롭게 지불된 후의 안도감, 가격표를 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주는 기쁨, 은행 잔고를 보며 느끼는 든든함과 평온함을 실제로 느꼈습니다. 이것은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손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메뉴판을 보고 원하는 음식을 주문한 뒤에는, 음식이 나올 것을 의심하며 계속 주방을 들여다보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이미 주문은 들어갔고, 곧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놓일 것이라는 편안한 ‘기대감’ 속에서 기다립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을 마치 이미 우주에 주문을 마친 음식처럼 대했습니다. ‘사랑받는 나’를 원한다면, 사랑받지 못해 안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대신, 이미 세상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충만함과 행복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그들은 ‘느낌’이 현실을 창조하는 진짜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려 애쓰는 대신,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의 느낌을 ‘지금 여기로’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결핍의 주파수에서 풍요의 주파수로 채널을 바꾸는,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비결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먼저 살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세계, 즉 3D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창조한 사람들은 이 순서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상이 더 근원적이고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먼저 만들어진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법칙입니다. 마치 건물을 짓기 전에 반드시 설계도가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설계도 없는 건물은 지어질 수 없듯, 상상 속에서 먼저 완성되지 않은 현실은 결코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원리를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잠들기 전, 아침에 눈을 뜬 직후, 혹은 하루 중 조용한 시간을 내어 자신이 원하는 현실이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진 장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단순히 그 장면을 영화처럼 바라보는 관객이 되는 것을 넘어,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오감으로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하는 집이 있다면, 상상 속에서 그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의 기쁨을 느낍니다. 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의 안락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따스함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심지어 집 안에 퍼지는 은은한 커피 향까지 맡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관계를 원한다면, 그의 손을 잡았을 때의 감촉, 귓가에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 함께 웃을 때 터져 나오는 행복한 감정을 실제처럼 느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공상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나의 새로운 집 주소를 등록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들은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꾸준히 자신의 새로운 주소지, 즉 ‘소원이 이루어진 세상’에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먼저 살기 시작하자, 보이는 세상이 서서히 그 설계도를 따라 재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상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자석처럼, 그에 걸맞은 사람과 사건, 환경들을 현실로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상상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을 빚어내는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창조의 도구였습니다.
의심이 찾아와도 괜찮다고 다독였습니다
현실 창조의 여정을 걷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의심’입니다. 아무리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를 생생하게 느끼고 상상해도, 눈을 뜨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 순간, ‘이게 정말 되는 걸까?’, ‘나만 또 헛된 기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의심이 드는 자신을 자책하고, 믿음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의심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의심이 찾아오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안된다’고 믿어왔던 낡은 습관이 새로운 믿음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오른손만 쓰던 사람이 왼손을 쓰려고 할 때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심과 싸우거나 억지로 누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의심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면, 그들은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를 대하듯 다정하게 그 마음을 바라봐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의심이 들 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아, 지금 불안하구나. 지금까지는 계속 이런 현실만 봐왔으니, 새로운 변화가 두렵고 믿기지 않는 게 당연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의심을 없애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대신,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의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대신, 부드럽게 자신의 주의를 다시 원하는 상태로 옮겨왔습니다. 비가 오는 날, 비가 온다고 해서 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듯, 의심이라는 먹구름이 잠시 끼었을 뿐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라는 태양은 여전히 그 자리에 빛나고 있음을 상기했습니다. 의심이 들 때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해’라고 자책하는 대신, ‘아, 내가 지금 새로운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의심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독이는 기회로 삼았을 때, 의심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원하는 상태에 머무는 힘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내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질문은 아마도 ‘어떻게?’일 것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막막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목표를 설정하는 동시에,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방법을 스스로 계획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떠올리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으면 이내 좌절하고 소망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성공적으로 창조한 사람들은 이 ‘어떻게’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과 우주(혹은 잠재의식)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나의 역할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정하고, 그 소망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를 ‘느끼는 것’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현실로 펼쳐낼 구체적인 방법과 과정, 즉 ‘어떻게’는 전적으로 내가 아닌, 더 큰 지혜의 영역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의 역할은 좋은 씨앗을 골라 땅에 심고, 물을 주며 햇볕을 쬐어주는 것까지입니다. 씨앗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는지, 그 복잡하고 신비로운 과정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만약 농부가 매일같이 땅을 파헤치며 씨앗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한다면, 그 씨앗은 결코 싹을 틔우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속에 ‘소망’이라는 씨앗을 심고 ‘느낌’이라는 물을 주었다면, 그 이후의 과정은 온전히 신뢰하고 맡겨두어야 합니다. ‘어떻게’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은, 땅을 파헤쳐 씨앗을 괴롭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잠재의식의 무한한 지혜를 믿지 못한다는 표현이며, 오히려 창조의 과정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신뢰’와 ‘내맡김’을 채워 넣었습니다. 그러자 상상도 못 했던 기발한 방법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통해,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소망이 현실로 나타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를 원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원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을 가질 ‘나’의 모습은 간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억 원’이라는 돈을 원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돈이 없는 사람’, ‘돈 걱정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행복한 연애’를 꿈꾸면서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바꾸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조의 법칙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누구라고 믿는지’에 해당하는 현실을 가져다줍니다. 세상은 거대한 거울과 같아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을 그대로 비춰줄 뿐입니다. 따라서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의 ‘나’에 대한 정의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무언가를 ‘소유’하는 상상을 넘어,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상상을 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다발을 세는 상상을 넘어, 부유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부자인 나라면 이런 사소한 지출에 불안해할까?’, ‘풍요로운 사람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까?’ 이처럼 ‘부자인 나’라는 새로운 배역에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더 이상 ‘돈 없는 나’로 연기하기를 멈추고, 새로운 캐릭터로서의 삶을 마음속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더 이상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이미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어 세상에 그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었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먼저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단단해지자, 현실에서도 그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오늘부터 마음속에서 그 사람으로 살아보세요. 당신의 자기 인식이 바뀌는 순간, 세상은 바뀐 당신에게 걸맞은 새로운 무대와 소품들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눈앞의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를 상상하고 느끼기 시작하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듯한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풍요를 상상하는데 오히려 돈 나갈 일이 더 생기고, 사랑을 상상하는데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 같은 일들 말입니다. 이런 원치 않는 현실에 부딪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흔들립니다. ‘역시 이건 안 되는 거였어’, ‘상상은 아무 소용없구나’라며 다시 예전의 절망적인 생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현실 창조에 성공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에 일희일비하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보이는 현실이 그저 ‘과거 생각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곧 막을 내리고 사라질 과거의 잔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일이 벌어져도 그것을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 내 안의 낡은 믿음들이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구나’, ‘새로운 현실이 오기 위해 묵은 것들이 청소되는 과정이구나’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풍요를 상상하는데 갑자기 자동차 수리비가 나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거의 당신이라면 ‘역시 난 돈이 없어’라고 절망했겠지만, 새로운 당신은 ‘더 좋은 차를 갖기 위한 과정인가 보군. 이 돈은 더 큰 풍요를 위해 기꺼이 지불한다’라고 생각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의 의미를 창조하는 주인의 태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폭풍우에 휩쓸려 함께 불안에 떠는 대신, 폭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고요한 중심처럼 자신의 내면 상태를 평온하게 유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그 현상을 마주한 내가 어떤 ‘느낌’과 ‘의미’를 선택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현실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고, 현실의 의미를 창조하는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믿음대로, 현실은 결국 그들의 내면 상태를 따라 항복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성공부터 믿음을 키웠습니다
처음부터 거대하고 이루기 힘들어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면, 우리의 이성은 쉽게 저항하고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내가 과연 수십억 자산가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이 현재의 나와 너무나 큰 간극이 느껴지는 소망은, 오히려 ‘불가능할 거야’라는 의심만 키울 수 있습니다. 현실을 창조한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작고 사소한 성공 경험을 통해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믿음의 근육을 차근차근 키워나갔습니다. 이것은 마치 헬스장에서 가벼운 아령부터 들기 시작하여 점차 무게를 늘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무거운 역기를 들려고 하면 부상을 입거나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작은 성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거운 무게도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마시고 싶은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기’, ‘타이밍 좋게 버스 바로 타기’, ‘원하는 주차 자리가 나타나기’,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 오기’ 등, 일상 속에서 쉽게 상상하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목표들을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이루어진 상태를 잠시 상상하고 느낀 뒤, 가볍게 잊어버렸습니다. 큰 소망처럼 집착이나 불안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작은 소망들은 쉽게 현실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차 자리가 나타나거나, 친구에게서 정말로 연락이 오는 경험을 하게 되면, 마음속에서는 작지만 강력한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어? 정말 되네? 내 상상이 정말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이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나의 상상력은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 있다’는 거대한 믿음의 토대가 됩니다. 의심이 찾아올 때마다, 이 작고 소중한 성공의 기억들은 든든한 방패가 되어줍니다. ‘그때도 됐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분명히 될 거야.’라며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만약 당신의 소망이 너무 크고 멀게 느껴진다면, 오늘 당장 이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작고 귀여운 소망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 작은 기적들이 모여, 당신의 삶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믿음의 파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이룰 때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그것이 아주 특별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치듯 말입니다. 그래서 ‘기적’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소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매우 비범한 일로 여깁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특별함’에 대한 기대가 창조의 과정을 방해하는 저항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것을 너무나 대단하고 특별하게 여길수록, 그것은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먼,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 창조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정 상태는 놀랍게도 ‘당연함’과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마치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에게 상상은 더 이상 초능력이나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삶의 일부이자, 원래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창조의 능력이었습니다. 이 ‘자연스러움’의 상태에 도달하면, 소망에 대한 조급함과 집착이 사라집니다. 간절히 매달리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그것이 내 것임을 알기에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마음을 채웁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이미 내 방에 있는 장난감을 떠올리는 평온한 마음과 같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이루어질까, 이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내가 사랑받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는 깊은 믿음이 뿌리내리면, 잠재의식은 그 ‘당연함’의 느낌을 현실로 증명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혹시 당신의 소망이 너무나 크고 대단하게 느껴져서 부담스럽다면,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그 편안하고 당연한 느낌이야말로, 소망이 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기 직전의 가장 강력한 신호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성공 후기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모든 화살표가 결국 ‘나’ 자신을 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을, 다른 사람을,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유일한 원인이자 창조주는 바로 ‘나 자신’, 정확히는 내 안의 ‘의식’과 ‘상상력’이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책임감인 동시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완전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세상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절대적인 힘의 자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줘야만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내 안에서 스스로를 사랑받는 존재로 느낄 때 세상이 그 사랑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사가 나에게 승진을 시켜줘야만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내면에서 유능한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확신을 가질 때 그에 걸맞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바깥세상이 아닌, 언제나 내 안에 있었습니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의 ‘가정(Assumption)’이었습니다. 내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있는지, 세상을 어떤 곳이라고 가정하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믿음을 바꾸자 세상은 마치 마법처럼 그에 맞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깨달음의 순간, 그들은 외부 환경의 피해자에서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창조주로 거듭났습니다. 더 이상 남을 바꿀 필요도, 세상을 원망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오직 내가 바꿔야 할 단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을 둘러보세요. 혹시 아직도 당신의 행복과 불행의 열쇠를 다른 사람이나 외부 조건이 쥐고 있다고 믿고 있지는 않나요? 그 모든 열쇠를 거두어 당신의 손에 꼭 쥐어보세요. 당신의 삶이라는 왕국의 유일한 통치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생각이 법이고, 당신의 느낌이 현실을 창조하는 칙령입니다.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창조의 법칙을 먼저 발견하고 용기 있게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법칙은 당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당신은 결코 텅 빈 캔버스가 아니라, 이미 손에 붓과 모든 색의 물감을 쥐고 있는 위대한 화가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도 모르게 어두운 색의 물감으로 원치 않는 그림을 그려왔을지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그 사실을 알았으니, 얼마든지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세요. 당신의 마음이라는 가장 고요하고 강력한 작업실에서, 당신이 가장 원하는 삶의 한 장면을 다정한 느낌으로 그려보는 겁니다. 그 작은 붓질 하나가, 당신의 잠든 창조주를 깨우고,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현실을 펼쳐낼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