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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하는 모든 것이다 I AM 확언으로 자존감 높이는 법

아무리 애를 써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기분, 혹시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좋은 글귀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지만 잠시뿐입니다. 다시 고개를 드는 건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는 자책과 깊은 무력감일 겁니다. 마음

21분 소요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이다 I AM 확언으로 자존감 높이는 법

아무리 애를 써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기분, 혹시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좋은 글귀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지만 잠시뿐입니다. 다시 고개를 드는 건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는 자책과 깊은 무력감일 겁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간절히 외치고 있는데, 현실은 야속하게도 자꾸만 빗나가는 것만 같죠. 마치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데 결코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쫓는 기분. 그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지치셨을까요. 어쩌면 당신의 일기장에는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좌절의 순간들이 빼곡히 적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답답한 현실이 세상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당신의 마음속에서 아주 조용히,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면요? 당신이 무심코 속삭이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그 믿음이, 바로 지금 당신의 세상을 빚어내는 단단한 조각칼이었다면요.

거울 속의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봅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아마 많은 순간,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먼저 찾아내곤 합니다. 어젯밤 잠을 설쳐 퀭한 눈, 조금 더 날렵했으면 하는 턱선, 마음에 들지 않는 옷차림 같은 것들이죠. 외적인 모습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의 거울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비춰봅니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얼마나 자주 초라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할까, 또 실수를 했네, 역시 난 안돼,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와 같은 생각들은 보이지 않는 채찍이 되어 스스로를 계속해서 때립니다. 이런 내면의 비판은 한번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하나의 작은 실수가 나는 역시 무능해라는 결론으로 비약하고, 다른 사람의 무심한 표정 하나가 모두가 나를 싫어해라는 확신으로 변질됩니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나는 원래 부족한 사람이라는 딱딱한 믿음의 갑옷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닙니다. 내가 비난하고 외면하고 싶은 낯선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 낯섦과 거리감은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높은 담벼락이 됩니다.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손가락질은 사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마음속의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마음의 소리들은 너무나 익숙해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내 성격이나 운명처럼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당신의 소심함, 당신의 부족함, 당신의 불안함은 정말로 변하지 않는 당신의 본질일까요? 아니면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어온, 그래서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낡은 녹음테이프 같은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에게 나는 부족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나는 늘 실패해라는 주문을 계속해서 외우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 주문에 아주 충실하게 응답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니, 세상도 당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허락된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의 가치를 믿지 않으니, 누구도 당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는 현실이 펼쳐진 것이죠. 이 모든 악순환의 시작은 바로 거울 앞에서, 마음의 거울 앞에서 당신이 스스로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주었는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나는… 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주가 숨을 죽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나는 입니다. 나는 피곤해, 나는 돈이 없어, 나는 자신이 없어 처럼 말이죠. 우리는 이 두 글자에 얼마나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라는 말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선언이자, 창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모든 지혜로운 가르침들은 이 말의 신성한 힘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당신이 나는… 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 온 우주는 당신이 그 뒤에 어떤 말을 붙일지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나는 뒤에 붙이는 그 말이, 바로 당신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현실의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현실을 창조할 신성한 권한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법 같은 이야기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당신이 나는 아픈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그 느낌 속에 머문다면, 당신의 몸과 마음은 그 말에 맞춰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아프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활기찬 활동보다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반대로 나는 건강한 사람이야 라고 선언하고 그 느낌을 가지려 애쓴다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좋은 음식을 찾고,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려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라는 말은 당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거대한 자석과 같습니다. 당신이 나는 늘 돈 때문에 힘들어 라는 자석을 들고 있다면, 당신의 삶에는 예상치 못한 지출, 갑작스러운 고장, 투자 실패와 같은 돈 문제들이 자석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달라붙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는 언제나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어 라는 풍요의 자석을 들고 있다면, 당신의 삶에는 뜻밖의 수입, 좋은 기회, 누군가의 도움과 같은 풍요의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배열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는 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세요. 나는 지금 이 신성한 창조의 도구로 무엇을 빚어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현실의 씨앗을 나의 의식이라는 밭에 심고 있는가?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요?

아마 마음속에서 이런 반문이 들려올 겁니다. 나는 부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통장 잔고는 텅 비어있어요.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데,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고 싶은데,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심장이 떨려요. 라고요.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과 내가 바라는 모습 사이의 커다란 간격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의 오감,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이 현실은 너무나 생생하고 단단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면의 선언과 외부의 현실이 충돌할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외부 현실의 손을 들어주고 맙니다. 역시 나는 안돼. 이게 내 현실이야. 라면서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만지고 느끼는 그 현실은, 현재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어제, 그저께, 한 달 전, 일 년 전,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품어왔던 과거의 믿음과 생각들이 단단하게 굳어져 나타난 결과물일 뿐입니다. 마치 농부가 봄에 씨앗을 심어야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당신의 현실은 과거에 심겨진 생각의 열매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열매가 맺힌 나무를 보면서, 나는 다른 열매를 원했는데! 라고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 앙상한 가지를 보며 풍성한 잎을 탓하고, 쓰디쓴 열매를 맛보며 달콤하지 않다고 나무를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열매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열매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밭에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당신의 통장 잔고, 텅 빈 인간관계, 불안한 마음은 모두 과거의 당신이 나는 부족해, 나는 외로워, 나는 불안해 라고 심었던 씨앗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보며 좌절하지 마세요. 그것은 그저 과거의 기록일 뿐,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은 없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힘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어떤 씨앗을 심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결과물인 현실을 기준으로 삼아 미래를 판단하는 것은,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앞 유리를 통해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을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의 느낌이 바로 현실의 청사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확언을 할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그것을 앵무새처럼 의미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자다, 나는 부자다… 라고 수백 번 외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대체 언제 부자가 되는 거야? 이건 다 거짓말 같아. 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말 자체에는 힘이 없습니다. 진짜 창조의 힘은 그 말을 했을 때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있습니다. 당신이 나는 사랑받고 있어 라고 선언했을 때, 정말로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고, 누군가에게 소중히 안겨 있는 듯한 포근함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면, 바로 그 느낌이 현실을 창조하는 진짜 신호입니다. 느낌은 바로 현실의 청사진과 같습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먼저 상세한 설계도, 즉 청사진을 그리는 것처럼, 당신의 느낌은 우주라는 위대한 건축가에게 나는 바로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요! 라고 전달하는 아주 구체적인 주문서입니다. 당신이 불안의 느낌 속에 계속 머문다면, 우주는 아, 이 사람은 불안을 더 경험하고 싶어 하는구나 라고 알아듣고 당신의 삶에 더 많은 불안의 요소들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상사에게 꾸중을 듣고, 갑작스러운 지출이 생기고, 사소한 오해로 다투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우주가 당신의 불안이라는 청사진에 충실하게 반응한 결과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지금 당장은 아무런 증거가 없더라도, 이미 소원이 이루어진 사람처럼 풍요롭고, 감사하고, 행복한 느낌 속에 의식적으로 머물려고 노력한다면, 우주는 알겠습니다, 주인님. 당신의 느낌과 똑같은 현실을 완벽하게 지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즉시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단순히 말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 그 말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에 집중해보세요. 눈을 감고, 나는 정말로 안전해 라고 속삭여보세요. 그리고 그 안전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을 상상해보세요. 어깨의 긴장이 풀리고, 호흡이 깊어지며, 심장이 편안하게 뛰는 그 느낌. 바로 그 느낌이 당신의 새로운 현실을 조각하는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가장 먼저 사랑받는 나를 선언하세요

수많은 나는… 선언 중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가장 먼저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부터 시작해보세요.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가치에 대한 믿음은 모든 창조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느끼면, 우리는 좋은 것들이 우리 삶에 들어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밀어냅니다. 돈, 좋은 관계, 건강, 성공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이런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어 라고 믿고 있다면, 설령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스스로 걷어차 버리거나, 금세 망쳐버리는 방식으로 그 믿음을 현실에서 증명해내고 맙니다. 이것은 마치 구멍 난 항아리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밑 빠진 항아리를 먼저 고치지 않으면, 그 어떤 풍요의 물도 담아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좋은 직장을 얻어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거나,素敵な 연인을 만나도 끊임없는 의심으로 관계를 망치는 것은 바로 이 구멍 난 항아리 때문입니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라는 선언은 바로 그 구멍 난 항아리를 단단하게 메우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사랑 그 자체이며, 사랑받기에 너무나 당연하고 충분한 존재임을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선언을 할 때, 굳이 특정한 누군가를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존재 자체로 온 우주로부터 지지받고, 보호받고, 환영받는 느낌을 상상해보세요. 마치 따스한 햇살이 아무런 조건 없이 세상을 비추듯, 당신이라는 존재 위에 무한한 사랑의 빛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그려보는 겁니다. 이 느낌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에 목매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거절해도, 나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이 생깁니다. 이 내면의 견고함은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며, 당신이 원하는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되어줄 것입니다.

하루에 단 3분, 나를 위한 고요한 시간

이 모든 것이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아주 작게 시작하면 됩니다. 하루에 단 3분, 오직 당신만을 위한 고요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가장 좋은 시간은 잠들기 직전이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입니다. 이때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가장 얇아져서, 우리가 심는 생각의 씨앗이 아주 깊고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자리에 눕거나 앉아서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선언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는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람이다 라는 선언을 선택했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은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는 겁니다. 정말로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아마 어깨는 활짝 펴지고, 등은 꼿꼿하며, 고개는 당당하게 들려 있을 겁니다. 회의 시간에 내 의견을 말할 때 더 이상 목소리가 떨리지 않고, 명확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동료들이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이고, 상사가 당신의 아이디어를 칭찬하며 등을 두드려주는 모습을 그려보는 겁니다. 회의가 끝난 후, 동료들이 다가와 오늘 발표 정말 인상 깊었어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때 당신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껴보세요. 이 모든 상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언젠가 그렇게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내가 그렇다 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치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의 가장 행복한 장면을 다시 돌려보듯,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서 그 기분 좋은 결과만을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잘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것은 약간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매일 3분씩, 꾸준히 이 상상 놀이를 계속하다 보면, 당신의 뇌와 몸은 서서히 그 느낌을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3분의 고요한 상상은, 당신의 내일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과거라는 낡은 옷을 벗어던지는 법

새로운 나를 선언하고 그 느낌 속에 머물려고 할 때, 우리를 가장 방해하는 것은 바로 과거라는 유령입니다. 네가 자신감 넘친다고? 너 저번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얼마나 떨었는지 잊었어?, 네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지난번에 그 사람한테 차였잖아. 처럼 과거의 기억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며 새로운 믿음을 방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거의 유령과 싸우려고 애씁니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억지로 지우려고 하죠. 하지만 저항하면 할수록 그 기억은 더욱 생생하게 떠오를 뿐입니다. 과거는 싸워야 할 적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더 이상 입지 않을 낡은 옷과 같습니다. 옷장 속에 몇 년 동안 입지 않은 낡은 옷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옷을 버리기 위해 우리가 옷과 싸우거나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이 옷은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아. 고마웠어. 라고 말하며 조용히 옷장에서 꺼내면 그만입니다. 그 옷을 입었던 시절의 나를 비난할 필요도, 그 옷 자체를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뿐입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억이 떠오를 때, 아, 이건 내가 예전에 입었던 낡은 옷이구나. 지금의 나에게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 라고 인식하고, 그저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당신이 입기로 선택한 새로운 옷, 즉 새로운 나는… 이라는 선언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과거의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당신이 나는 실패할지도 몰라 라는 낡은 옷을 입고 있었을 때 겪었던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이제 당신은 그 옷을 벗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이상 그 옷이 당신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의 과거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선택하는 당신의 모습입니다.

넘어져도 괜찮아요, 다시 선언하면 되니까요

새로운 나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어제까지 나는 부족해 라는 생각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오늘 나는 풍요로워 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즉시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예전의 습관이 불쑥 튀어나오는 날이 있을 겁니다. 사소한 실수에 또다시 자책하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역시 난 안되나 봐 라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주저앉아 버립니다. 거 봐, 역시 나는 변할 수 없어. 라고 단정 짓고 예전의 낡은 옷을 다시 주워 입습니다. 하지만 넘어진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저 여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백 번 넘어지는 것을 보고 누구도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넘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저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언제나 재정적으로 풍요롭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겼다고 해봅시다. 이때 과거의 당신이라면 나는 역시 돈 복이 없어 라며 절망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먼저, 불안한 감정이 드는 것을 허용하세요. 아, 돈 때문에 걱정되는구나. 괜찮아. 그리고 나서 선언하는 겁니다. 괜찮아. 이 돈은 더 큰 풍요를 위해 잠시 나가는 것뿐이야. 나는 언제나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어. 라고요. 이 과정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열 걸음 나아가다 한두 걸음 미끄러지더라도, 당신은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노력과 시도는, 설령 그것이 서툴고 불안정해 보일지라도, 새로운 당신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입니다.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언제든 다시 선언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가 있으니까요.

세상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내면에서 꾸준히 새로운 나를 선언하고 그 느낌을 유지하기 시작하면, 아주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당신의 외부 세계, 즉 현실이 그 내면의 변화에 맞춰 서서히 재배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99.9MHz, 슬픔과 결핍 이라는 주파수에 맞춰져 있을 때는 온통 슬픈 노래와 부족함에 대한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의식적으로 주파수를 107.7MHz, 기쁨과 풍요 로 바꾸면, 라디오에서는 신나는 노래와 좋은 소식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당신이 어떤 주파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경험하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는 존중받는 사람이다 라는 느낌 속에 머물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이전에는 당신을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심스러워지거나, 혹은 당신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존중해주는 새로운 사람들이 당신 곁으로 다가옵니다. 당신이 나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운 좋은 사람이다 라고 느끼기 시작하면, 꽉 막혔던 프로젝트가 신기하게 해결되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항상 가려던 주차장은 만차였는데 오늘은 신기하게 자리가 비어 있고, 마감 직전의 이벤트에 우연히 당첨되는 소소한 행운들이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갑자기 당신에게 친절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거울이 그 바뀐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현실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 내면의 주파수를 조절함으로써, 당신이 경험할 현실의 채널을 직접 선택하는 방송국장과도 같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무언가 부족한 내가, 노력해서 원하는 무언가를 얻어내는 과정 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의 가장 위대한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얻거나,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이미 당신 임을 깨닫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당신 안에는 이미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버전의 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당신, 풍요로운 당신, 사랑받는 당신, 건강한 당신. 이 모든 가능성들은 마치 수많은 옷이 걸려있는 거대한 옷장처럼 당신의 상상 속에 이미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그중에서 오늘 입고 싶은 옷을 하나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자신감이 부족해 라고 느끼는 것은, 당신이 옷장 속에 있는 자신감 넘치는 나 라는 멋진 옷을 보지 못하고, 자신감 없는 나 라는 낡고 해진 옷을 계속해서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선택이 그랬을 뿐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지 마세요. 이미 당신 안에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당신은 창조주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완벽한 존재이며, 당신의 상상 안에서 당신은 원하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 무엇이든 가질 수 있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려는 노력조차 내려놓으세요.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존엄하며,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오늘부터 당신이 살고 싶은 삶의 주인공이 되어, 그에 걸맞은 옷을 선택해 입으세요. 당신은 더 이상 관객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대의 주인공입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 바깥의 세상이 결정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의 삶은, 오직 당신만이 쓸 수 있는 한 편의 위대한 소설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의 첫 문장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은 오늘, 당신의 이야기 첫머리에 어떤 문장을 쓰시겠습니까? 당신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그 작은 속삭임이, 당신의 세상을 창조하는 가장 위대한 주문임을 잊지 마세요. 오늘 밤 잠들기 전,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눈을 감고 당신의 마음에 속삭여주세요. 당신이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선물해주세요. 당신은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당신이라는 우주는, 바로 그 한마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