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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감에서 풍요의식으로 잠재의식 상태를 바꾸는 기술

아무리 애써도 자꾸만 제자리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꽉 채워 살아내도, 어쩐지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통장 잔고는 늘 아슬아슬합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이것만 해결되면…’ 하고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원은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 자꾸만 저만치 멀어집니다. 남들은 쉽게 얻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이렇게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걸까요.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날들이 이어집니다. 어쩌면 이건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책과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을 온통 적셔버립니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답답한 현실이 바깥세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은 당신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조용히 상영되고 있는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면요. 믿기지 않겠지만,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당신의 현실을 단단하게 빚어내는 유일한 재료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6분 소요
결핍감에서 풍요의식으로 잠재의식 상태를 바꾸는 기술

아무리 애써도 자꾸만 제자리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꽉 채워 살아내도, 어쩐지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통장 잔고는 늘 아슬아슬합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이것만 해결되면…’ 하고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원은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 자꾸만 저만치 멀어집니다. 남들은 쉽게 얻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이렇게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걸까요.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날들이 이어집니다. 어쩌면 이건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책과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을 온통 적셔버립니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답답한 현실이 바깥세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은 당신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조용히 상영되고 있는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면요. 믿기지 않겠지만,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당신의 현실을 단단하게 빚어내는 유일한 재료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내 세상엔 왜 늘 무언가 부족할까

우리의 마음은 아주 정직한 땅과 같습니다. 무엇을 심든 그대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결핍’이라는 씨앗을 마음에 심고 있습니다. ‘돈이 부족해’, ‘사랑이 부족해’, ‘시간이 부족해’와 같은 생각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마음 밭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 생각들은 그냥 사라지는 연기가 아닙니다. 하나하나가 아주 작은 씨앗이 되어 의식의 땅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립니다. ‘이번 달 카드값 어떡하지?’라는 걱정, 친구의 좋은 소식에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씁쓸함, ‘나는 왜 저런 행운이 없을까’하는 한숨. 이 모든 순간들이 바로 결핍의 씨앗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키워진 결핍의 씨앗은,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나 우리의 세상을 온통 뒤덮습니다.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안함은 ‘나는 돈이 부족하다’는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외로운 밤에 느끼는 쓸쓸함은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믿음에 힘을 실어줍니다. 현실은 그저 우리의 내면 상태를 비춰주는 거울일 뿐입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닦거나, 거울을 향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습을 바꾸고 싶다면, 거울 앞에 선 나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부족함’의 현실은, 당신이 틀렸거나 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 밭에 어떤 씨앗이 심겨 자라고 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는 신호일 뿐입니다.

마음속 텅 빈 그릇이 현실을 채운다

상상해보세요. 당신의 마음 한가운데에 커다란 그릇이 하나 놓여있다고 말입니다. 이 그릇은 당신의 ‘의식’ 혹은 ‘상태’를 상징합니다. 당신이 하루 종일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이 그릇을 채우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가난하다’, ‘나는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하루를 보낸다면, 당신의 그릇은 ‘가난’과 ‘부족함’이라는 내용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세상은 당신의 마음속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보고, 정확히 그 내용물에 맞는 경험들을 당신의 삶으로 배달해 줍니다. 마치 텅 빈 그릇의 모양대로 물이 채워지듯, 당신의 텅 빈 ‘결핍 의식’이라는 그릇 안으로 그 모양에 딱 맞는 ‘결핍의 현실’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현실에서 무언가를 얻어야만 마음이 채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들어와야 풍요롭다고 느끼고, 연인이 생겨야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조의 법칙은 그 순서가 정반대라고 말합니다. 먼저 마음의 그릇을 ‘풍요’로 채워야, 현실에서 풍요로운 경험이 나타납니다. 먼저 ‘사랑받고 있음’의 느낌으로 그릇을 가득 채워야, 그 느낌에 걸맞은 사람이 내 삶에 등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의 법칙’입니다. 당신이 먼저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사실로 ‘가정’하고 그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세상은 그 가정을 현실로 증명해 보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바깥에서 무언가를 가져와 텅 빈 그릇을 채우려 애쓰지 마세요. 그 대신, 당신의 손으로 직접, 마음속 그릇을 원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이 믿는 이야기가 당신의 주소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아주 훌륭한 배달부와 같습니다. 이 배달부는 우리가 건네주는 ‘주소지’를 보고 그곳으로 정확하게 현실이라는 소포를 배달합니다. 여기서 주소지란 바로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당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늘 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야’라는 이야기를 굳게 믿고 있다면, 잠재의식은 그 주소를 정확히 입력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의 삶에 ‘돈 때문에 고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인물, 사건들을 착실하게 배달해 줄 것입니다. 반대로, ‘나는 이상하게 돈이 잘 따르는 사람이야’라는 이야기를 새로운 주소지로 입력한다면 어떨까요? 배달부는 이제 그 주소에 맞는 소포들, 즉 예상치 못한 기회, 도움을 주는 사람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가져다주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 주소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합니다. ‘왜 나에겐 이런 힘든 일만 배달되는 거야!’라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배달부는 죄가 없습니다. 그는 그저 당신이 건넨 주소지로 갔을 뿐입니다. 주소지를 바꾸지 않는 한, 배달부는 매일 같은 곳으로 똑같은 종류의 소포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나 어려움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믿고 있지? 나의 현재 주소지는 어디지?’ 그 이야기를 찾아내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원치 않는 소포를 받는 피해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주소지를 써낼 수 있는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바깥세상과 싸우기를 멈출 때

눈앞의 현실이 너무나 고되고 힘들 때,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은 보통 저항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부족한 현실을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 발버둥 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상황을 원망하며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마치 성난 파도를 맨손으로 막으려는 것처럼, 우리는 외부의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현실은 이미 과거에 당신이 보낸 생각과 느낌의 결과물, 즉 ‘굳어버린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의 스크린을 향해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스크린 속 배우나 이야기는 당신의 외침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바깥세상과의 싸움을 멈추는 데서 시작됩니다. 조용히 내면으로 돌아와 ‘영사기’의 필름을 갈아 끼우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당신의 상상력이 바로 그 영사기이고, 당신이 품는 느낌과 믿음이 바로 필름입니다. 지금 통장 잔고가 비어있다고 해서 그 현실과 싸우며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상영된 ‘가난’이라는 영화를 보며 괴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신, 조용히 눈을 감고 당신의 내면 극장에서 ‘풍요’라는 새로운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이미 모든 것이 넉넉한 장면을 그려보세요. 그 풍요로움이 주는 안도감과 기쁨을 지금 여기서 느껴보는 것입니다. 외부 현실에 대한 저항을 멈출 때, 당신의 모든 에너지는 비로소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데 온전히 사용될 수 있습니다.

느낌, 보이지 않는 현실의 재료

우리는 흔히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느낌이 동반된 생각’이 현실을 창조합니다. 그냥 머릿속으로 ‘나는 부자다’라고 수만 번 되뇌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생각이 아무런 감흥이나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힘없는 단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나는 부자다’라고 상상했을 때, 가슴속에서부터 따뜻한 안도감, 편안함, 자유로움, 기쁨과 같은 ‘느낌’이 실제로 피어오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바로 그 ‘느낌’이 잠재의식이라는 거대한 창조의 작업실에 전달되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은 당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직 당신의 감정, 즉 ‘느낌’을 알아듣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하고, 그 기분을 ‘지금 여기서’ 실제로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현실 창조의 가장 핵심적인 비밀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기를 바란다면,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서야 합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야 합니다. 그 사람과 손을 잡고 걸을 때의 따뜻함,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의 설렘, 함께 웃을 때의 행복감을 지금 이 순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 느낌이 바로 미래의 현실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됩니다. 당신의 느낌은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현실을 빚어내는 가장 단단하고 확실한 재료입니다.

지금 눈앞의 현실은 어제의 그림자일 뿐

새로운 느낌을 품고 풍요로운 상상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방해꾼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눈앞의 현실’입니다. 마음속으로는 풍요를 느끼려 애쓰지만, 눈만 뜨면 날아오는 카드값 고지서와 텅 빈 통장이 비웃는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게 현실이야’ 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순간 우리는 좌절하고, 결국 상상하기를 포기하며 다시 예전의 불안과 걱정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번번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우리는 어제의 그림자인 현재의 현실에 너무나 큰 힘과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는 이 현실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이 어제, 그제, 그리고 지난 몇 달, 몇 년 동안 품어왔던 생각과 느낌들이 시간을 거쳐 모습을 드러낸 결과물일 뿐입니다. 마치 어제 심은 씨앗이 오늘 아침에야 겨우 싹을 틔운 것과 같습니다. 오늘 새로운 씨앗을 심기로 마음먹었다면, 어제 심은 씨앗에서 돋아난 싹을 보며 실망하고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아, 이건 어제의 내가 심은 것이구나’라고 담담하게 인정하세요. 그리고 오늘의 나는 묵묵히 새로운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일에 집중하면 됩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강력하게 당신의 과거를 증명하더라도, 그것에 속지 마세요. 그것은 힘을 잃어가는 과거의 메아리일 뿐, 당신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할 힘은 없습니다.

이미 다 가진 사람처럼 걷고, 말하고, 생각하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의 상태와,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사람의 상태는 완전히 다릅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조급하고, 불안하며, 끊임없이 외부의 신호를 찾습니다. ‘언제쯤 이루어질까?’, ‘이 방법이 정말 맞는 걸까?’ 의심과 초조함이 가득합니다. 반면, 이미 소원을 이룬 사람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이미 가진 것을 누리는 데 집중합니다. 현실 창조의 핵심은, 아직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먼저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사람’의 상태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끝에서 시작하기’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소원이라고 해봅시다. 그 소원이 바로 어젯밤에 이루어졌다고 상상해보세요. 오늘 아침, 당신은 어떤 기분으로 눈을 뜰까요? 아마 어깨를 짓누르던 불안감 대신 깊은 안도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우편함에서 날아온 고지서를 볼 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대신 ‘아, 처리해야 할 일이구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이미 당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면의 평온함과 자신감이 바로 ‘이미 가진 사람’의 상태입니다. 이러한 ‘~인 척하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닙니다. 잠재의식에 ‘이것이 나의 새로운 진짜 모습이야’라고 선언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는 외부적으로 돈을 함부로 쓰며 부자인 척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핵심은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내면의 상태’를 먼저 갖는 것입니다.

잠들기 전 5분, 새로운 세상을 심는 시간

우리의 의식은 잠들기 직전에 아주 특별한 상태가 됩니다. 낮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며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던 이성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잠재의식의 문이 활짝 열리는 시간입니다. 이 순간은 마치 밭의 흙이 아주 부드러워져 어떤 씨앗이든 쉽게 심을 수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하루 종일 결핍과 걱정에 시달렸더라도, 이 잠들기 전 5분만 잘 활용한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잠자리에 누워 몸의 힘을 쭉 빼고 편안하게 이완하세요. 그리고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아주 짧고 간단한 장면 하나를 떠올립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라면,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때 단순히 반지를 보는 것을 넘어, 손가락에 느껴지는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 무게감까지 느껴보세요. 그 반지를 볼 때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충만함과 안정감을 온전히 느끼는 것입니다. 그 장면을 영화처럼 반복해서 상상하되, 중요한 것은 시각적 이미지보다 그 장면에 동반되는 ‘감정’에 푹 잠기는 것입니다. 합격의 기쁨, 반지에서 느껴지는 행복감. 그 느낌을 자장가 삼아 잠이 드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부담스럽거나 스트레스로 느껴진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즐거운 상상 놀이여야 합니다. 억지로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느낌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잠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씨앗을 심고 자꾸 파보지 마세요

정원사는 땅에 씨앗을 심고 나면, 그것이 잘 자랄 것이라 믿고 기다립니다. 매일같이 땅을 파헤쳐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싹이 트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씨앗이 자라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잠들기 전 상상과 느낌을 통해 ‘소원 성취’라는 씨앗을 잠재의식의 땅에 심었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 현실이라는 열매를 맺을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땅을 파헤칩니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정말 이루어지긴 하는 걸까?’,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와 같은 의심과 걱정들이 바로 땅을 파헤치는 행위입니다. 이런 의심의 생각들은 ‘나는 아직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결핍의 상태로 당신을 다시 끌어내립니다. 풍요의 씨앗 옆에 끊임없이 결핍의 잡초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의심이 피어오를 때, 그것과 싸우려 하지 마세요. 그저 ‘아, 또 예전의 낡은 생각이 찾아왔구나’하고 알아차려 주고, 부드럽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됩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의 편안함과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믿으세요. 제대로 심겨진 씨앗은 반드시, 가장 완벽한 때에 싹을 틔우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유일한 임무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관객이 아닌, 당신 삶의 유일한 작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삶의 관객으로 살아왔습니다. 마치 정해진 각본에 따라 흘러가는 영화를 스크린 밖에서 지켜보듯,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해왔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잠시 기뻐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좌절하고 원망하면서 말입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나는 그저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이 거대한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당신은 한 번도 관객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유일한 작가이자 감독이며, 주인공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글 쓰는 재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부족하다’는 슬픈 드라마의 대본을 써 내려왔을 뿐입니다. 이제 펜을 다시 손에 쥐세요. 당신의 상상력이 바로 그 펜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기 시작하세요. 어떤 제약도, 어떤 한계도 없습니다. 당신의 상상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쓰고 느끼고 믿는 그 이야기가, 내일 당신이 살아갈 현실의 대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바깥을 향해 던졌던 모든 질문을 거두어, 당신의 내면을 향해 돌려보세요. 당신의 손에 들린 하얀 종이와 펜을 보세요. 당신의 삶이라는 위대한 이야기는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로 가득합니다. 그 첫 문장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당신이 쓰는 모든 문장,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곧 세상이 될 것이니, 부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지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럴 힘이, 당신 안에 이미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하세요.